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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4

하얗게 햇살이 내리쬐는 당직실에서 다시 사무실로 왔다.
지난 몇 달 간 중대한 생활환경의 변화를 맞이하느라 손을 놓았던 논문들을 다시 적기 위해서…
하지만, 아직도 손을 떠났다가 다시 내게 돌아오던 논문들은 다시 날아갈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메일함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던 논문들은 내 머릿속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것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제는 휴일이었던 터라 만삭인 아내와, 밖으로 나가게 되어 신나하는 아이를 데리고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범벅인 소아과, 그리고 수많은 대기행렬이 있는 산부인과를 거쳐, 집 근처 산책로로 돌아오게 되었다. 벌써부터 여름임을 알려주려는듯한 한낮의 햇살과 길가에 핀 장미와 이름모를 새들과 풀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며 가는 아기를 위해 며칠전부터 예약해 두었던 실내 놀이터에도 다녀왔다.

창틀에 새로이 빨아서 건조를 위하여 놓은 뽀로로 인형을 손짓하며 달라는 아이를 달래어 다른 장난감으로 관심을 쏟게 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 하나에 두 명의 부모가 붙들린채로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있었다. 부모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따로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따로 있었겠지만 철저히 아기의 의사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곳이 그 곳이었다. 나는 푹신하게 깔려진 매트가 가장 좋았다. 더웠던 밖과는 달리 깨끗하게 닦이고, 시원한 에어컨에 공기청정기까지.. 우리 집보다 더 깨끗해 보였던 그 곳에서 나는 햇빛을 쬐며 낮잠을 자고 싶었다. 어제의 수많았던 콜들을 뒤로 한채…

어린 시절에 우리집에는 마루가 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거실 즈음에.. 마루에서 따뜻한 햇살을 쬐며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선명히 박혀있는 마루자국이 못내 싫어서 안 자려 하였지만, 왠일인지 그 곳에 있으면 잠이 솔솔 왔다. 아버지의 팔베게를 베고 자면 얼굴에는 자국에 생기지 않아서 런닝 차림의 아버지의 팔 베게를 베는 최상의 환경이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당직실에서 그런 낮잠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가족들이 있기에 그런 호사는 잠시 뒤로하고 언제올지 모를 전화기만을 손에 꼭 쥔 채 나왔다.

사실 논문은 내 미래를 위한 일 수 없는 투자이다. 뭔가를 적어서 그것을 인쇄물로 들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도 있긴 하지만…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몇 달전의 나와는 달라진 지금은 그 길이 더 요원해진 것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라는 마음에…

해야하겠다는 당위감은 있지만, 딱히 언제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일 저일 바쁜 것들로 인하여 순위가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집에 가면 아버지로써 지내느라 혼자 컴퓨터를 켤 새는 전혀 없고.. 그러기에 지금 같은 시간이 제일 좋은데.. 잠깐 일을 하다가도 아기가 좋아하던 뽀로로 인형이 생각이 나서 구매를 하기 위해 여러 사이트들을 돌아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귀여워하며 자기 덩치 반만한 인형을 꼬옥 껴안고 잠자리에 들어갈 모습을 상상하며…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아버지도 그런 삶을 살아오셨을 것이다. 애초에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텐데.. 본인의 꿈은 뒤로하고, 직장에서 생활하고, 집에 와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알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진 채…

조금씩 우리의 행동을 따라하고, 우리의 말들을 옹알옹알 따라하는 아기를 보며 생각을 한다. 훗날 이 아이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까? 수많은 고민들을 뒤로 한 채, 다신 오지 않을 오늘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느끼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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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less life

블로그의 제목은 그 블로그의 의미를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블로그의 경우에는.. 특정한 주제도 없고, 신변잡기적이면서도 개인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나름 최선의 노력을 하며 운영하는터라… 그냥 도메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이래저래 출근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뭔가를 새로 사서 기분을 좋게하거나.. 아니면 생활에 내가 즐거워할만한 혁신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만료 되어 이직을 했고, 살던곳에 더 살지 못하여 이사를 하게되었다. 심지어는 잘 쓰던 마이피플도 서비스 접는다고 나가라고 하는 상황이다.

다들 지나보면 긍정적인 변화가 되긴 하겠지만 eustress 역시 distress에 버금가는 심적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몰아서 한꺼번에 오는 변화는 별로인 것 같다. 게다가 더 안 좋은 것은 내가 주도해서 하는 것이 아닌 뭔가에 쫓게듯 하게 되는 그런 변화는 좋지 않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면.. 그냥 가만히 앉아 시체처럼 쉬며 변화에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사실 주중과 주말 모두 가정에서나 직장에서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전혀 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도 한달에 꼬박꼬박 2~3개의 뻘 포스트를 남겼지만 지난달과 지지난달 쯤에는 가뭄에 콩나듯이.. 아니.. 몇달째 공유기 지름글만 남겨 놓았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블로그의 제목을 변경한다는 것은 나름 개인적으로는 혁신이라고 볼 수 있고, 남들이 보기에는 왜 그 정도 것을 갖고 중요한 일인 양 포스팅까지 하느냐고 할 수도 있고, 물론.. 대부분은 관심이 없겠지만… 그래도 내 자신에게는 뜻깊은 일이라…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작년과 제작년에.. 점심을 먹고 한 곳의 커피숍을 내집 드나들듯이 방문하여 더치커피 한 잔 들고는 산책로를 걸으며 마시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호사는 모두 생략.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끝을 모르는 메시지들을 처리하느라 이리뛰고 저리뛰며 살고 있다. 길어진 출퇴근 시간은 덤으로… 가운은 다시 길어졌고, 당직도 이전처럼…. 삶은 조금씩 풍요로워가지만 삶의 질은 한.. 7년전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은 참 좋은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다시 coffee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날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mypeople
R.I.P. My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