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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l이 주는 전공의에의 충고

1014204872.pdf35년간의 분열증환자 전공의 치료와 전공의 교육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미국 Maryland 대학 정신과 교수 Hill은 정신과 초년생 전공의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이렇게 열거하였다.(1955)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분열증 환자에게로 부닥쳐 보기를 최소 2~3년 해야만 정신과 의사는 그 관찰과 경험을 종합하여 나름대로의 자기체계를 세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를 택한 의사들의 동기란 상당수에서 자신의 정신건강에 관심이 컸었거나 또는 친지 중에서 정신질환을 앓아서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가지고 주위에서는 ‘치료자 자신이 정신병자이니 치료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공격은 무시해 버려라. 치료자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단, 이런 관심이 영아적인 호기심 infantile curiosity의 일종으로 자신이 이를 깨닫지 못한 경우에는 오히려 환자의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인턴 과정을 마치고 1년차 레지던트가 되면 그 즉시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신체질환을 치료하는데서 중요한 것은 진단을 내리기까지이고 그 뒤는 대개 관례에 따라 투약, 수술을 하는 것으로 끝나나 정신과에서의 진단은 그 중요성이 훨씬 덜하고 치료과정이 큰 과제가 되며, 치료자의 모든 행동과 성격이 치료를 좌우한다는데다 환자 또한 고분고분하지가 않다. 즉 이렇게 전혀 다른 기반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신과 환자의 치료이라서 학생 때 배운 것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가 맛보는 실망과 경악,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때 까딱하면 인턴때의 습관이 남아 분열증환자에게서 신체증상만 찾아내려는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가 있다.

처음 이들 레지던트의 눈에는 입원환자가 정신병적 상태로 보이지 않는다. 환자는 대개 외관이 멀쩡하고 식사 잘하고 조용하고 정상적으로 대화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중한’ 조언을 해 주는 선배의사에게 ‘왜 내 실력을 몰라주느냐? 자신없는 녀석들!’이라는 식의 반발의식이 생긴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믿었던 환자에게 한번 당하거나 주위에서 당하는 것을 보면 그때는 반대로 모든 환자가 정신병적 상태인 것 같이 여겨지고, 여러모로 환자와 비슷한 그 가족들도 그런 상태가 아닌가 여겨질 때가 많다. 다시 좀 지나면 환자가 가진 것이 자아의 병인 것을 알고 이로 인해 부차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 정신기능에 장애가 온 것임을 안다. 그러나 이 때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은 환자가 자기의 그런 자아를 모두 의식하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는 것으로서, 이에 따라 레지던트는 환자에게 충고와 암시를 주고 호령과 명령을 하고 비평을 내리다가 급기야는 논쟁까지 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는 또한 현재 정신병에 있지 않은 사람에서도 분열성 과정 schizoid process 이나 정신분열과정 schizophrenic proscess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니, 이제는 여기에서 비약하여 그 자신도 그럴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러는 사이 좀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맡은 입원환자 중에 호전되는 사람이 생긴다. 저절로 호전될 수도 있고, 또는 입원한 그 자체 때문에, 그리고 주치의 아닌 다른 의사, 간호사의 노력과 약물요법, 작업요법, 운동요법 등등의 다른요인 때문에 호전되는 수가 많은 바, 막상 당사자인 레지던트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다. 그러나 여하간 환자가 호전되었으니 일단 안심은 된다. 그러나 그는 이 경험 때문에 자칫하면 정신 질환의 역동을 공부하는데 저항을 느끼며 또는 물리적 요법에 자신을 익숙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또 더러는 정신분석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환자를 분석하려 들기도 하는데,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법칙이 있다. 수련초기의 수개월간은 제발 남을 고칠 cure 생각도 분석할 생각도 말라. 단순히 환자와 환자 때문에 생기는 가족들의 문제와 가족들, 그리고 병원의 의료직원, 행정직원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보살펴’ care 만 주라. 환자를 대할 때에는 우선 ‘성의있게 그리고 인간답게’대하라.

마침내 이런 수개월이 지나다 보면 레지던트는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된다. 즉, 아무리 자기 혼자 날뛰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결국 자기는 병동장, 과장 같은 병원상사에게 얽매인 몸이고, 퇴원을 위협하는 가족의 ‘양해’에 얽매인 몸이고, 자기 자신이 가진 ‘인간이라는 제한성’에 얽매인 몸이라는 것을. 따라서 장차 정신치료에 재질을 발휘할 레지던트일수록 ‘정신분열증은 도시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입원한 환자를 위해서는 개인정신치료만 아니라 병원전체가 치료에 참가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컨대 타 과에서 말하는 ‘고친다는 것’ cure은 정신과에서는 ‘보살펴준다는 것’ care을 뜻하며, ‘치료’ treat 는 연상하고 계약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정신과의사는 예술가 artist인 것이다.

치료자는 자기의 출생, 성장과정, 현재의 마음자세, 동기 등과 같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개인분석 personal analysis을 통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노력하여 알아야 하고, 또 사실상 조만간 알아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다. 치료자여, 그대의 맹점을 알라. 예를 들겠다. 동성애 homosexual 문제를 가진 환자가 하루는 의사에게 말한다. ‘사실은 이것이 내 문제 중 큰 것임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먼저 나를 치료하던 의사는 내가 그 문제의 서두만 끄집어내면 눈을 돌리거나 기침을 하거나 담배를 피워물거나 몸 자세를 고쳐 앉거나 해서 더 이상 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나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자기 문제와 자신을 모르는 치료자는 정신치료를 남에게 실시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분열증 환자의 정신치료에서 우선 초년생 전공의가 할 일은 환자의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가 호전되어 퇴원할 때에도 ‘문제가 되생기면 다시 입원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실제 다시 찾아올 정도로 되지는 않더라도 환자에게는 늘 든든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그리고 물론 다른 까닭도 있겠지만, 치료 중에 환자의 긍정적 전이를 지나치게 분석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Hill은 말한다.


–  digitalized by innominata

– referred from Dr. Ahn’s Rapid orientation manual [unknown original reference]